원-달러 환율이 단숨에 1265원을 돌파하면서 한국 경제에 비상이 걸렸다. 미국의 긴축 행보와 우크라이나 사태에 이어 중국의 봉쇄 조치가 확산되면서 글로벌 경기 둔화 공포가 금융시장을 짓누르고 있다.
27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4.4원 급등한(원화 가치는 하락) 1265.2원으로 마감해 사흘 연속 연고점을 경신했다. 환율이 1260원을 넘어선 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초기인 2020년 3월 23일(1266.5원) 이후 처음이다.
장 마감 직전엔 1266.0원까지 치솟았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주까지 1240원 선을 방어했지만 이번 주 들어서만 26.1원 급등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이 계속되는 가운데 중국의 봉쇄 조치가 상하이에 이어 베이징 일부까지 확대되자 중국발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면서 안전자산인 달러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여파로 코스피도 1.1% 하락한 2,639.06에 거래를 마쳤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고강도 긴축을 예고하고 있어 달러 강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며 “상반기 내 환율이 1300원을 넘어설 수도 있다”고 했다.
미국에서 대학원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김모 씨(32)는 요즘 하루에도 몇 번씩 환율 시세를 들여다본다. 한국에서 부모님이 매달 생활비 3500달러를 송금해 주는데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지난해 말보다 60만 원 이상이 더 들기 때문이다. 김 씨는 “생활비 부담 때문에 학업에 집중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원-달러 환율이 2년 1개월 만에 1260원을 뛰어넘으면서 ‘강달러 쇼크’가 한국 경제를 덮치고 있다. 환율 급등세가 수입물가를 끌어올려 10년 만에 4%대로 치솟은 소비자물가 상승 압력을 더 높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원자재 가격 급등과 환율 상승의 이중고를 떠안은 기업들의 실적에 빨간불이 켜지면서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공포도 커지고 있다.
수출 기업들은 원화 약세가 호재지만 가격 경쟁력보다는 오히려 원자재 가격 급등과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에 따른 수요 감소를 걱정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봉쇄령이 확대되면 주력 산업인 반도체와 자동차 생산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원화보다 중국 위안화와 일본 엔화 가치가 더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국내 수출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며 “성장 버팀목이 됐던 수출 기업의 실적이 부진할 경우 저성장 국면에 빠질 수 있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넷플릭스에 이어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마저 시장의 기대에 못 미치는 1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기업들의 ‘어닝 쇼크’가 현실화하고 있다. 이 여파로 26일(현지 시간) 미국 나스닥지수가 4% 가까이 급락했고 27일 한국 코스피(―1.10%)와 일본 닛케이평균주가(―1.17%), 대만 자취안지수(―2.05%)도 줄줄이 떨어졌다.
세계은행(WB)은 26일 보고서를 통해 세계 경제가 50년 만의 최대 물가 충격을 맞고 있다며 19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우크라이나 사태가 2024년 말까지 식량 및 에너지 가격 상승을 이끌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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