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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이성계에 관한 몇 가지 에피소드
by 봉남킴 | Date 2021-02-15 14:50:07 hit 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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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에서는 태조 이성계에 관한 몇 가지 잘  안 알려진 일화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보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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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는 왼손잡이?


위 사진은 함흥본궁(이성계의 고향집)에 남아있는 태조 이성계의 활로서,


이 태조어구는 건정한 체구의 현대인들도 거의 사용하기가 힘들다고 하는데,

(* 이건 당대인 기준으로도 마찬가지여서 이성계의 아버지인 이자춘은 이성계의 활을 보고, 이건 사람이 쓸 무기가 아니다라고 혀를 내둘렀다고 해)


그리하여 이 어구를 이성계가 실제로 전투에서 사용했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 되기도 했지만...


황산대첩비를 폭파시킬 만큼,


태조 이성계를 폄하한 일제시대에,


조사자료로도, 


이 태조어구는 실제로 사람이 여러차례 전투에서 당긴 흔적이 남아있다고 해.


그리고 이러한 조사는 또 한가지의 흥미로운 사실을 전해주는데,


이 활을 당긴 흔적에 대한 분석결과, 태조는 왼손을 주로 사용한 왼손잡이 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함.


* 현대적인 기법이 사용된 분석이 있다면, 더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이 태조어구는 현재 북한(참고로 김일성이 가장 싫어했던 역사인물 중 한명이 이성계인데,, 그는 이성계의 고향을 지날때면, 열차커튼을 닫아버릴 정도로 이성계를 싫어했고, 그 손자 김정은도 사극 <정도전>이 북한에서 유행하자 이를 강력하게 단속할 만큼 민감한 반응을 보였어)에 있는 관계로... 더 이상에 추가적인 정보는 없지만,  어쩃든 한민족 최고의 궁사가 왼손잡이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굉장히 흥미로운일 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성계의 최측근 장수들의 공통점 


“올라(兀羅)의 전쟁에 태조가 처명을 사로잡아 죽이지 않았으므로 처명이 은혜에 감동해 매양 몸에 맞은 화살 흔적을 보면 반드시 목이 메어 울면서 눈물을 흘렸으며 종신토록 태조의 곁을 따라다니며 모셨다. 황산대첩에서 처명이 태조의 말 앞에 있으면서 힘을 다하여 싸워 공을 세웠다.”(<태조실록>‘총서’)


이성계의 측근장수 중에 가장 유명한 인물은 여진족 출신인 이지란 이지만,


이성계와 사석에서는 반말을 사용했을 정도로, 격의 없이 지냈던 장수는,


이지란 이외에 두명이 더 있는데,


이원경과 처명으로,


이원경은 원나라의 동녕동부지를 지냈던 인물로, 


이성계에게 항복하여 그의 휘하가 되었으며,


처명 또한 요동성을 공격할떄,


이성계의 신들린 활솜씨와 이원경의 설득(항복 다단계 피리미드?)으로 이성계의 휘하가 되었는데,


이지란 역시 이성계가 활솜씨로 굴복시켜 자신의 휘하로 만들었다는 일화가 있는 것을 보면,


이성계 밑에 형제와 같이 지내던 부하들은 모두 그와 한때 경쟁하거나 적이었던 셈(*다 패서 부하로 만든다는 유비 패왕설의 실제버전 ㄷㄷㄷ)


이는 태조가 사람을 쓰는데 있어,


한때의 적 이었더라도, 능력만 있다면, 등용하여 자신의 곁에 두었으며,


이들 외에도 조무(원나라 출신 장수)와 배주(원나라 출신 장원급제자) 등,


이성계에게 사로잡히거나, 항복한 인물들 중 에서 그에게 등용된 인물들이 존재해.


또한 신분에나 출신에도 구애 받지 않아,


이지란(여진족) 이원경(고려인- 이원경은 고려인 이기는 했지만, 이성계처럼 그 가문이 원나라에 투항해 벼슬을 하던 집안으로 특이하게도. 이오르 테무르라는 몽골식 이름 외에 쉴레이만 메흐니라는 튀르크식 이름도 가지고 있었다고 해) 처명(중국인) 등 그의 최측근 장수들은 민족구성만 해도,


여진, 고려, 중국으로 다국적 이었으며...


황산대첩때 이성계가 사살했던, 


유명한 왜구장수 


아지발도 역시 상황이 여의치 않아,


사살했지만,


태조는 처음에는 생포해서 자신의 부하로 만들고 싶다는 뜻을 나타내기도 하였어(당시 이성계는 왜구의 만행에 폐허가 된 마을을 보고 빡칠대로 빡친 상태였는데도, 아지발도의 무공만은 높이 평가해 그러한 생각을 한것으로- 전쟁터에서 싸웠던 적들을 부하로 만든다는 것은 얼핏 보면 쉬워 보이지만, 사실은 굉장히 어려운 일로 범인이라면 하기 힘든 결단이라고 생각해)


이성계의 플랜 A가 실현 되었다면,


이성계의 최측근 장수 명단에는 여진족, 고려인, 중국인, 일본인이 같이 있는 진귀한 모습을 볼 수 있었을지도...


* 이지란외에 두명은 지명도가 매우 낮은 편인데... 아무래도 처명은 이지란과 캐릭터가 많이 겹치고(관우-장비처럼 대조되는 캐릭이 아님) 이원경의 경우는 또 다른 사정이 있는데, 이원경은 아들대에도 여진족들을 소탕하는 공을 세웠지만, 문제는 손자인 이시애가 세조때 반란을 일으키는 바람에...역적집안이 되어서... 조상의 활약까지 뭍히게 됨ㅠㅠ


* 조선 건국 과정에서 신진 사대부와와 권문세족의 완전히 다른 집단 이라는 것은 부정되고 있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도전처럼 집안에 어느정도하자가 있거나(물론 이 부분은 논란의 여지가 있음), 지배층 내부의 아웃사이더, 아예 하층신분 이거나, 귀화인들 중에 이성계를 따라 새왕조 건설에 동참했던 인물들이 많았던 것도 분명한 사실이야.


* 이런걸보면 이성계가 정적인 된 정몽주를 끝까지 정몽주를 죽이기 보다는 설득하여 자신의 편으로 만들려고 했던 것도 이해가 가지.(하지만 자식놈이 킬방원 모드가 발동되기 시작하는데..)


* 이성계의 이런 성향은 이성계의 적들도 어느정도 인정해서, 이색은 이성계와 틀어질대로 틀어진 상황에서도, 자신의 목숨을 부지한 것은 이성계가 의리를 지켜서라고 시를 남기기도 했어.


Related image 이성계에 관한 몇 가지 에피소드500 × 327

 

이성계의 또다른 힘


이성계의 사생활은 그가 가졌던 권력의 크기에 매우 단백했는데(왕이 되기 이전에도, 중앙에서 무시 당했다고 하더라도, 자기 영지에서는 왕아나 마찬가지였는데)


이로 인해서,


이성계가 말을 오래 타서 정력이 약했던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어디서 본 적이 있어;;;


그러나 이런 단백한 사생활은,


이성계의 강씨부인에 대한 사랑(사실 강씨생전에도 찬덕주씨처럼 강씨 이외의 여인이 있긴 했었어. 물론 그렇다고 해도 당대 지배층 중 사생활이 매우 단백한편 인건 맞지만..) 이나 혹은 자기 절제의 산물로...


왕자의 난이 일어난 이후 할일이 없어진 이성계는...


태종의 배려로 화의옹주 김씨(칠점선)라는 이쁜처자를 후궁으로 맞았는데,

*조선초기는 내명부의 호칭 정리가 제대로 안돼, 이렇게 후궁이 옹주로 책봉받기도 함.


60대 후반의 나이로 숙신옹주라는 딸을 얻어,


자신의 '힘'을 증명하였어


* 이런걸 보면 이성계가 어린 아들을 후계자로 세운 것도 그 만큼  이방석이 성장할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자신이 충분했기 때문으로 보여. 실제로도 왕자의 난 이후 극심한 스트레스 속 에서도 10년 가까이 더 살았고...


이성계가 딸 숙신옹주에게 가옥과 토지를 내려주는 문서 이성계에 관한 몇 가지 에피소드

이성계는 말년에 얻은 이 귀여운 딸 아이가,


자신의 죽은 후,


혹 아무도 돌봐주지 않을까,  걱정이 많았던지,


태종 1년, 아직 매우 어린 그녀를 위해 '숙신옹주가대사급성문' 을 내려주는데...


가옥과 토지를 내려면서, 


석재는 어느 곳에서 사야 하는지, 재목은 어떻게 잘라낼지, 


가옥 배치에 대해 몸채, 부엌, 술방, 창고, 다락방, 사랑 등 건물의 종류와 칸수, 그리고 그 건물의 초가와 기와의 구별 등 까지 매우 구체적으로 적어주고,


그 자손이 영원히 이  집에 살 수 있도록 할 것을 당부하였어.


* 이 숙신옹주가대사급성문은 이두문이 섞여 있어 이두 연구에 도움이 되는 자료인 동시에, 조선 초기 가옥, 토지 등의 재산에 관한 법제 연구 및 당시 가옥 구조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라고 해.


* 숙신옹주는 성장하여, 검교참찬문하부사 홍언수의 아들 홍해에게 시집을 갔고,  1453년 단종 재위시기까지 살다가 돌아가셨다고 함.


* 이상으로 글을 마칠게


*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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